사해문서
1. 서론: 광야에서 발견된 고대 도서관
1.1 년의 우연한 발견과 그 파장
20세기 고고학 및 성서학 연구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1947년 사해 북서쪽 연안의 척박한 유대 광야에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해 봄, 타아미레(Ta’amireh) 베두인 부족의 젊은 목동 무하마드 아드-디브(통칭 에드-디브, ‘늑대’)는 잃어버린 염소 한 마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1 그는 예리코 남쪽, 사해 연안의 석회암 절벽에 난 작은 동굴 입구를 발견하고, 혹시 염소가 그 안에 있을까 하여 돌을 던져 넣었다. 그러나 그의 귀에 들린 것은 염소의 울음소리가 아닌, 토기 그릇이 ‘쨍’ 하고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였다.2
호기심에 이끌려 동굴 안으로 들어간 그는 아마포에 싸인 낡은 가죽 두루마리들이 담겨 있는 여러 개의 길쭉한 도자기 항아리들을 발견했다.2 그 순간, 목동 소년은 자신이 인류의 지성사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킬 고대의 도서관을 깨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우연한 발견은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칭송받는 사해문서(Dead Sea Scrolls)의 서막을 열었으며, 이후 성서 본문의 역사, 제2성전기 유대교, 그리고 초기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1
발견된 두루마리들이 학계의 주목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베두인들은 두루마리들을 베들레헴의 골동품상인 ’칸도’로 알려진 카릴 이스칸더 샤힌에게 헐값에 넘겼다.6 이 두루마리들은 다시 여러 경로로 흩어졌다. 일부는 예루살렘 시리아 정교회의 마르 아타나시우스 예수 사무엘 대주교에게 팔렸고, 다른 일부는 히브리 대학교의 고고학자 엘르아살 L. 수케닉 교수의 손에 들어갔다.1 수케닉 교수는 이 두루마리들이 기원전후 시기의 히브리어 성서 사본임을 직감하고 그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지한 학자였다.9
이후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두루마리에 대한 소문은 퍼져나갔고, 1949년부터 요르단 고고학연구소와 프랑스 성서·고고학 학교(École Biblique)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다.1 1947년부터 1956년까지 약 10년간, 고고학자들과 베두인들은 쿰란 지역 일대에서 총 11개의 동굴을 추가로 발견했으며, 이 동굴들에서 약 930여 종에 달하는 고대 문서와 수만 개의 작은 단편들을 발굴해냈다.2 2017년에는 1950년대에 이미 도굴되었지만, 두루마리가 보관되었던 항아리 파편 등이 발견된 제12동굴이 확인되기도 했다.1
이처럼 사해문서의 발견사는 한 목동의 낭만적인 일화로 시작되었지만, 그 실체는 정치적 격변과 학문적 열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수십 년에 걸쳐 수만 개의 조각들을 맞추어 나간 지적이고 고된 탐구의 과정이었다. 초기 발견의 혼란 속에서 일부 두루마리들은 훼손되거나 영구히 유실되었으며,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트레버 박사가 찍은 사진이 후에 삭아버린 원본보다 더 나은 보존 상태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9 이는 고고학적 발견의 취약성과, 흩어진 파편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해독하려는 후속 연구의 결정적 중요성을 웅변한다. 따라서 사해문서의 ’발견’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망각의 위기에 처한 고대의 지혜를 구출해낸 끈질긴 학문적 복원의 대장정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1.2 사해문서의 정의: 연대, 재질, 언어를 통해 본 개관
‘사해문서’ 또는 ’사해 두루마리’는 사해 북서쪽 연안의 쿰란 유적지 및 인근 동굴들에서 발견된 고대 유대 문헌들을 총칭하는 용어다.10 이 문서들은 연대, 재질, 언어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연대 측면에서 사해문서는 고고학, 고문서학,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등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대부분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1 특히 쿰란 유적지에서 발견된 동전들은 문서들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기준점을 제공한다.15 이 연대는 기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완전한 히브리어 구약성서 사본인 레닌그라드 사본(Codex Leningradensis, 서기 1008년 제작)보다 무려 1000년 이상 앞서는 것으로, 성서 본문 연구의 역사를 단숨에 기원전 시대로 끌어올린 혁명적인 발견이었다.13
둘째, 재질의 측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문서는 잘 가공된 양피지(동물 가죽)나 파피루스 위에 기록되었다.1 필기구로는 새의 깃촉 등이 사용되었으며, 잉크는 주로 탄소 성분의 검댕을 아교나 기름과 섞어 만든 것을 사용했다.1 이러한 재료들은 건조한 사해 지역의 기후와 빛이 차단된 동굴 속 항아리라는 절묘한 보존 환경 덕분에 2000년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2 이 중 가장 독특한 사례는 제3동굴에서 발견된 『구리 두루마리』로, 이는 부식된 두루마리 형태의 얇은 구리판 두 개에 문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1
셋째, 언어의 측면에서 사해문서는 당시 유대 사회의 다층적인 언어 환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서의 약 80-85%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다시 고전적인 성서 히브리어, 쿰란 공동체 특유의 방언으로 보이는 ‘사해문서 히브리어’, 그리고 후대 랍비 문헌의 기초가 된 ‘원시 미쉬나 히브리어’ 등으로 세분된다.1 나머지 문서들은 당시 근동 지역의 공용어였던 아람어와 헬레니즘 세계의 공용어였던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2 이는 사해문서를 남긴 공동체가 고립된 집단이 아니라 당대의 지적, 문화적 흐름과 교류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사해문서는 특정 시기, 특정 재료, 특정 언어로 규정되는 단일한 문서군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다양한 재료와 언어로 기록된 방대한 문헌의 집합체다. 이는 단순한 성서 사본의 모음을 넘어, 기원전후 유대 사회의 신앙과 사상, 문화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표 1: 쿰란 동굴별 주요 발견 문서
| 동굴 번호 | 주요 발견 문서 및 특징 |
|---|---|
| 제1동굴 | 1947년 최초 발견. 보존 상태가 양호한 7개의 주요 두루마리 발견: 대 이사야서 두루마리(1QIsaa), 공동체 규칙서(1QS), 하박국 주해(1QpHab), 전쟁 두루마리(1QM), 감사 시편(1QH), 창세기 외경(1QapGen), 이사야서 단편(1QIsab).6 |
| 제2동굴 | 베두인에 의해 발견. 희년서, 집회서 등 30여 개의 단편 발견.9 |
| 제3동굴 |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 가장 독특한 유물인 구리 두루마리(3Q15) 발견. 보물 목록이 기록되어 있음.1 |
| 제4동굴 | 쿰란 유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동굴(125m). 가장 방대한 양의 문서 발견. 전체 문서의 약 90%에 해당하는 400여 개 사본의 수만 개 단편들이 발견되어 ’문서의 보고’라 불림.1 |
| 제7동굴 | 발견된 17개의 단편이 모두 파피루스에 그리스어로 기록됨. 출애굽기(7Q1), 예레미야의 편지(7Q2) 등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 판독이 어려워 논쟁의 대상이 됨.9 |
| 제11동굴 | 가장 긴 두루마리인 성전 두루마리(11QTemplea, 길이 약 8.15m), 시편 두루마리(11QPsa), 욥기 타르굼(아람어 번역) 등 중요한 문서 다수 발견.1 |
2. 두루마리에 담긴 내용 분석
사해에서 발견된 약 930여 개의 문서는 그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구약성서의 일부를 담고 있는 ‘성서 사본’, 둘째는 구약성서 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당시 널리 읽혔던 ‘외경 및 위경’, 그리고 셋째는 문서를 기록하고 보관한 공동체의 고유한 신학과 규율을 담은 ’공동체 문헌’이다.2 이 세 가지 범주의 문서들은 각각 성서학, 역사학, 종교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1 장: 성서 사본 - 본문 비평의 새로운 지평
사해문서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 개의 사본은 구약성서의 내용을 담고 있다.10 이 사본들의 발견은 구약성서 본문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승되었는가에 대한 연구, 즉 본문 비평학(textual criticism) 분야에 혁명을 가져왔다.
2.1.1 마소라 본문(MT)과의 비교: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텍스트
사해문서 발견 이전, 학자들이 신뢰할 수 있었던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성서 사본은 중세 시대(서기 9-11세기)에 유대인 서기관 집단인 마소라 학자들에 의해 표준화된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 약칭 MT)이었다.24 이 마소라 본문과 성서가 처음 기록된 시기 사이에는 천 년이 넘는 시간적 공백이 존재했고, 이로 인해 비평적 학자들은 오랜 필사 과정에서 원문이 변질되거나 후대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정되었을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13
그러나 쿰란에서 발견된 성서 사본들은 이러한 회의론에 강력한 고고학적 반증을 제시했다. 특히 제1동굴에서 완벽한 형태로 발견된 대 이사야서 두루마리(1QIsaa)는 천 년 후의 마소라 본문과 비교했을 때, 약 95% 이상이 일치하는 놀라운 정확성을 보여주었다.13 나머지 5%의 차이점 역시 대부분 단어의 철자법 차이나 동의어 사용, 접속사 유무와 같은 사소한 필사 오류에 불과했으며, 본문의 신학적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차이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13 다른 성서의 단편들 역시 마소라 본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13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서 본문이 유대인 서기관들의 엄격하고 신중한 필사 전통을 통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의 변질 없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보존되었음을 입증했다.2 만약 사해사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성서 본문의 보존성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 수단이 부재한 상태에서 본문 왜곡에 대한 의심은 훨씬 더 강하게 제기되었을 것이다.13
2.1.2 인역(LXX)과의 관계와 본문의 다원성 문제
사해문서가 마소라 본문의 고대성과 신뢰성을 입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수록 사해문서는 제2성전기에 단일하고 표준화된 성경 본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더욱 혁명적인 사실을 드러낸다. 초기 연구가 마소라 본문과의 유사성에 집중하며 본문의 ’안정성’을 강조했다면, 후속 연구는 다양한 본문들과의 비교를 통해 고대 유대교의 ‘본문 다원성’(textual pluralism)을 밝혀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된 것은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된 고대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Septuagint, 약칭 LXX)이다.27 70인역은 여러 부분에서 마소라 본문과 상당한 차이를 보여, 오랫동안 번역자들이 히브리어 원문을 자유롭게 의역하거나 축약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쿰란에서 발견된 일부 히브리어 사본들은 놀랍게도 마소라 본문이 아닌 70인역의 번역 저본(Vorlage)으로 추정되는 본문 형태와 일치하는 양상을 보였다.29
가장 대표적인 예는 예레미야서와 사무엘서다. 70인역 예레미야서는 마소라 본문보다 약 8분의 1가량 짧고, 장의 순서도 다르다. 과거에는 이것이 번역 과정에서의 축약이라 생각했지만, 쿰란 제4동굴에서 발견된 예레미야서 사본(4QJerb, 4QJerd)은 70인역처럼 짧은 형태의 히브리어 본문을 담고 있었다.31 이는 70인역 번역자들이 임의로 본문을 줄인 것이 아니라, 마소라 본문의 조상과는 다른, 더 짧은 고대의 히브리어 판본을 번역했음을 시사한다. 사무엘서의 경우에도 쿰란 사본(4QSama)은 마소라 본문에는 없으나 70인역에는 존재하는 여러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어, 70인역의 독법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러한 발견은 제2성전기 유대 사회에 단 하나의 ’원문(Urtext)’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텍스트 전통이 공존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학자들은 당시 유통되던 성서 본문을 크게 (1) 후대의 마소라 본문으로 발전한 ‘원-마소라 본문’(Proto-Masoretic Text), (2) 70인역의 번역 저본이 된 ‘원-70인역 본문’(Proto-Septuagint Text), (3) 사마리아인들의 오경과 유사한 ‘원-사마리아오경 본문’(Proto-Samaritan Pentateuch Text), 그리고 (4) 이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본문’(Non-aligned Text) 등으로 분류한다.32 쿰란 동굴은 이 모든 종류의 사본들이 함께 발견되는, 고대 본문 다원성의 살아있는 증거였다. 이는 성서 본문 비평의 목표를 단순히 ’원래의 본문’을 복원하는 것에서, 다양한 고대 본문 전통들의 역사와 신학을 이해하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표 2: 예레미야서 및 사무엘서 본문 비교 (쿰란 vs. 마소라 본문 vs. 70인역)
| 성경 구절 | 마소라 본문 (MT) | 70인역 (LXX) | 쿰란 사본 (4QJerb, 4QSama) |
|---|---|---|---|
| 예레미야 10:3-11 | 이방 풍습에 대한 긴 비판(9절 포함)이 존재함. | 이방 풍습에 대한 비판이 더 짧고, 9절(다시스와 우바스의 금과 은)이 없음. | 70인역과 같이 9절이 누락된 짧은 형태의 히브리어 본문을 보여줌.31 |
| 사무엘상 1:22 |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아이를 젖 떼거든… 데리고 가서…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그리고 내가 그를 번제물로 삼아 영원히 그와 함께 머물게 하리이다.” | 마소라 본문에는 없는 “그리고 내가 그를 번제물로 삼아…“라는 구절을 70인역과 동일하게 포함하고 있음. |
| 사무엘상 10:27-11:1 |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11: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 “…그는 잠잠하였더라. 약 한 달 후에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 마소라 본문에는 없는 “약 한 달 후에“라는 시간적 연결구를 70인역과 동일하게 포함하고 있어 이야기의 흐름을 더 자연스럽게 만듦. |
2.1.3 정경 연구에 미친 영향: 에스더서의 부재와 외경의 존재
사해문서는 성서 본문의 형태뿐만 아니라, 어떤 책이 ’성서’로 간주되었는가 하는 정경(Canon) 형성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쿰란에서 발견된 200여 개의 성서 사본 중, 유일하게 그 어떤 단편도 발견되지 않은 책은 에스더서(Esther)이다.10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결과인지, 아니면 쿰란 공동체가 의도적으로 에스더서를 배제했기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학자들은 몇 가지 가능성을 제기한다. 첫째,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며,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 쿰란 공동체의 신학과 맞지 않았을 수 있다. 둘째, 에스더서의 배경이 되는 부림절 축제를 쿰란 공동체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34 셋째, 일부 학자들은 에스더서가 다른 구약성서보다 늦은 시기인 헬레니즘 시대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해왔는데, 쿰란에서의 부재가 이러한 추측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13
반대로, 쿰란에서는 오늘날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제2경전’(Deuterocanon)으로, 개신교에서는 ‘외경’(Apocrypha)으로 분류하는 여러 책들의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사본이 발견되었다.13 특히 토빗기(Tobit), 집회서(Ben Sira 또는 Sirach), 예레미야의 편지(Letter of Jeremiah) 등이 대표적이다.9 과거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는 이 책들이 히브리어 원본 없이 그리스어로만 전해진다는 점을 들어 정경에서 제외하는 주요 논거 중 하나로 삼았다.13 그러나 쿰란에서 이 책들의 고대 히브리어 사본이 발견됨으로써, 이 책들이 유대교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이 증명되었다.35 이는 제2경전을 구약성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입장에 강력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했으며, 정경 형성 과정이 후대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유동적이었음을 보여주었다.35
2.2 장: 외경 및 위경 - 잊혀진 유대교 사상의 보고
사해문서는 정경 및 제2경전 외에도,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으나 후대 유대교와 기독교의 정경 목록에서는 최종적으로 제외된 방대한 문헌들, 즉 ‘위경’(Pseudepigrapha)을 포함하고 있다. 이 문서들은 신구약 중간기 유대교의 풍부하고 다양한 사상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창이다. 그중에서도 쿰란 공동체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에녹서와 희년서는 단연 주목할 만하다.
2.2.1 에녹서(Book of Enoch)와 희년서(Book of Jubilees): 묵시문학과 율법 재해석
쿰란의 동굴들에서는 에녹서의 아람어 사본과 희년서의 히브리어 사본이 각각 10여 개 이상 발견되었다.5 이는 시편, 신명기, 이사야서 등 정경의 주요 책들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량으로, 이 두 책이 쿰란 공동체 내에서 거의 정경에 준하는 권위를 누렸음을 시사한다.29 이 책들이 후대의 정경 목록에서 제외되면서 ‘주변부’ 문헌으로 취급받아 온 것을 생각하면, 쿰란에서의 발견은 이들의 원래 위상을 재평가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는 정경의 경계가 확립되기 이전, 무엇이 ’주류’이고 무엇이 ’비주류’였는지에 대한 현대적 구분이 시대착오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쿰란 공동체에게 에녹서와 희년서는 그들의 우주관, 종말론, 달력, 율법 이해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텍스트였으며, 이들의 사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열쇠다.
에녹서는 노아의 증조부인 에녹이 하늘로 승천하여 신의 비밀을 보고 온 내용을 담은 묵시문학의 집대성이다.39 쿰란에서 발견된 부분들은 주로 ‘감시자들의 책’, ‘거인들의 책’, ‘천체의 책’ 등으로 알려진 에녹 1서의 초기 부분에 해당한다. 이 책은 죄의 기원을 인간의 타락이 아닌, 하늘의 ‘감시자들’(Watchers)이라 불리는 천사들이 인간 여성과 결합하여 ’네피림’이라는 거인족을 낳은 사건에서 찾는다.40 이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인 셰미하자(Shemihazah)와 아사셀(Asael/Azazel)은 세상에 온갖 악과 금지된 지식을 퍼뜨린 존재로 묘사된다.40 에녹서는 이러한 신화적 서사를 통해 악의 기원, 천사론과 악마론, 종말의 때에 있을 심판, 그리고 의인들을 위해 예비된 구원 등 풍부한 신학적 주제를 다룬다.41 특히 쿰란 공동체의 특징인 빛과 어둠의 이원론적 세계관, 복잡한 천사론, 그리고 ’인자(Son of Man)’라는 메시아적 칭호의 발전 과정에 에녹서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40
희년서는 ‘작은 창세기’(Leptogenesis)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며, 천지창조부터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는 시점까지의 역사를 재서술하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역사를 49년 주기의 ‘희년’(Jubilee) 단위로 재구성하고, 모든 사건을 1년 364일(정확히 52주)로 구성된 태양력 달력에 따라 기록한다는 점이다.43 이는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던 태음력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으로, 쿰란 공동체가 왜 예루살렘 성전 체제와 결별하고 자신들만의 분리된 공동체를 형성했는지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단서다.44 희년서는 또한 모세오경에 나오는 율법들의 기원을 시내산 언약 이전, 즉 아브라함이나 노아, 심지어 창조 이전 하늘의 천사들이 지키던 ’하늘의 법’으로까지 소급한다. 이를 통해 율법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안식일 준수나 할례와 같은 특정 계명들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2.3 장: 공동체 문헌 - 쿰란 공동체의 신학과 삶
사해문서의 약 3분의 1은 성서나 외경/위경이 아닌, 문서를 남긴 공동체 자체의 고유한 사상과 생활 규범을 담고 있는 ‘공동체 문헌’(Sectarian Documents)이다.11 이 문헌들은 이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유대 분파의 내면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1차 사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대표적인 공동체 문헌으로는 『공동체 규칙서』, 『전쟁 두루마리』, 『다마스쿠스 문서』, 『성전 두루마리』, 그리고 수수께끼의 『구리 두루마리』 등이 있다.
2.3.1 『공동체 규칙서』(1QS): 조직과 규율
제1동굴에서 발견된 『공동체 규칙서』(Serekh ha-Yahad, 약칭 1QS)는 쿰란 공동체의 헌법과도 같은 문서로, 그들의 조직, 사상,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자료다.18 이 문서에 따르면, 공동체는 스스로를 ‘야하드’(Yahad, ‘함께함’ 또는 ’공동체’를 의미)라 칭했으며, ’새로운 계약’을 맺은 참 이스라엘 공동체임을 자처했다.47
『공동체 규칙서』는 공동체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규정한다. 공동체는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영적 지도 아래 평신도들이 따르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동체에 가입하려는 지원자는 2년 이상의 수련 기간을 거쳐야 했으며, 이 기간 동안 엄격한 심사와 교육을 통과해야만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정식 회원이 되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공동체에 헌납하고 공동 소유의 원칙에 따라 생활해야 했다.49
또한 이 문서는 공동 식사, 정기적인 정결 예식, 공동 회의 등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을 상세히 규율한다.33 규칙을 어긴 자에게는 식량 배급 삭감, 공동체 회의 참여 금지, 심지어 출교와 같은 엄격한 벌칙이 가해졌다.
신학적으로 『공동체 규칙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 영에 관한 교설’이다. 이 교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빛의 영’(진리의 영)과 ‘어둠의 영’(거짓의 영, ’벨리알’이 다스림)을 두어, 세상의 종말까지 이 두 영이 인간의 운명을 두고 투쟁한다고 가르친다.40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 두 영 중 하나의 지배를 받도록 예정되어 있으며, ‘빛의 자녀들’(공동체 회원)은 빛의 영에 속하여 의와 진리를 따르고, ‘어둠의 자녀들’(외부인들)은 어둠의 영에 속하여 죄와 거짓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예정론적 세계관은 쿰란 공동체의 배타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신학적 기초가 되었다.48
2.3.2 『전쟁 두루마리』(1QM): 빛과 어둠의 종말론적 대결
『전쟁 두루마리』(Megillat ha-Milhamah, 약칭 1QM), 또는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 규칙서’는 쿰란 공동체의 강렬한 종말론적 기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서다.8 이 두루마리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벌어질 거대한 전쟁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전쟁은 ‘빛의 아들들’, 즉 쿰란 공동체와 그들을 돕는 천사장 미카엘을 비롯한 천사 군단이 한편이 되고, ‘어둠의 아들들’, 즉 이방 민족들(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적들)과 그들과 결탁한 배교한 유대인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악마 벨리알의 군단이 다른 한편이 되어 벌이는 우주적 대결이다.6 두루마리는 이 전쟁이 총 40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며, 군대의 편제, 각 부대가 사용할 무기(창, 칼, 방패)의 종류와 규격, 군대의 깃발에 새겨질 문구, 전투 대형과 전술, 그리고 전쟁 중에 낭송해야 할 기도문과 찬양시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이 문서는 단순히 군사 교본이 아니라, 신학적 선언문이다. 전쟁의 승패는 인간의 군사력이나 전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으며, 이 마지막 전쟁을 통해 악의 세력은 완전히 섬멸되고 지상에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세워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담고 있다. 이는 자신들을 소수의 의로운 남은 자로 여기며 세상과 단절된 채 광야에서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쿰란 공동체가,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를 통해 현재의 고난을 견디고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했음을 보여준다.
2.3.3 『구리 두루마리』(3Q15)의 수수께끼
제3동굴에서 발견된 『구리 두루마리』는 사해문서 중 가장 이질적이고 불가사의한 문서다.1 다른 문서들이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종교적, 문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과 달리, 이 문서는 얇게 편 구리판에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그 내용은 이스라엘 전역의 64개 장소에 숨겨진 막대한 양의 금과 은, 그리고 다른 보물들의 목록이다.9
두루마리는 “헤롯의 궁 아래 수로에, 은 40키카르”, “아코르 골짜기 동쪽 계단 밑에, 은궤와 그릇들, 총 17탈란트“와 같은 방식으로 구체적인 장소와 보물의 양을 명시한다.52 여기에 기록된 보물의 총량은 오늘날 가치로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물의 정체를 두고 학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첫째, 쿰란 공동체 또는 에세네파 전체의 자산이라는 설이다.53 그러나 재산 공유와 금욕을 강조했던 공동체가 이토록 막대한 부를 소유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둘째, 로마에 대항하여 싸웠던 유대인 반란군의 군자금 목록이라는 설이다.52 이 경우, 로마군이 반란을 진압한 후 이 목록을 입수하여 보물을 모두 찾아갔기 때문에 오늘날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고 설명할 수 있다.53 셋째,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설은 제1차 또는 제2차 유대-로마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을 안전한 곳에 분산하여 숨겨두고, 훗날을 위해 그 위치를 기록한 비상 목록이라는 설이다.1 이 가설은 보물의 엄청난 규모를 설명할 수 있지만, 왜 성전의 비밀 목록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구리 두루마리』는 그 언어와 문체가 다른 쿰란 문서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 과연 쿰란 공동체가 직접 작성한 것인지조차 불확실하다. 마지막 항목에는 “이것의 사본과 그 설명, 그리고 측정치와 각 물품의 목록이 있는 다른 문서가 있다“고 적혀 있어, 또 다른 보물 지도의 존재를 암시하며 미스터리를 더한다.52 이처럼 『구리 두루마리』는 사해문서 연구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가장 흥미로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3. 저자, 공동체, 그리고 그들의 세계
사해문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는 ‘누가, 왜,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이 문서들을 기록하고 동굴에 숨겼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는 저자 논쟁, 쿰란 공동체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키르베트 쿰란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3.1 장: 저자 논쟁 - 에세네파 가설과 그 대안들
3.1.1 에세네파 가설과 그 근거
사해문서가 발견된 직후부터 현재까지 학계의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는 이론은 이 문서들이 고대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에세네파’(Essenes)에 의해 작성되고 수집되었다는 ’에세네파 가설’이다.13 이 가설은 고대 문헌의 기록과 고고학적 발견, 그리고 문서 자체의 내용을 종합한 결과물이다.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리적 일치다. 로마의 역사가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그의 저서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 “사해 서쪽 해안, 엔게디 오아시스 위쪽으로 에세네파 사람들이 거주한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쿰란 유적지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54 둘째, 생활 방식의 유사성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Philo)과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에세네파가 재산을 공유하고, 공동 식사를 하며, 엄격한 정결 예식을 행하고, 흰 옷을 입는 등 독특한 공동체적 삶을 살았다고 기록했다.14 이러한 묘사는 『공동체 규칙서』(1QS)에 나타난 쿰란 공동체의 규율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49 셋째, 사상적 공통점이다. 요세푸스는 에세네파가 운명과 신의 예정을 강하게 믿었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공동체 규칙서』의 이원론적 예정론과 맥을 같이한다.49
이러한 강력한 증거들로 인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를 에세네파의 한 분파, 특히 가장 엄격하고 분리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그룹으로 보고 있다.14
3.1.2 ’정의의 스승’과 ‘악한 사제’: 공동체의 기원과 갈등
쿰란의 공동체 문헌들, 특히 하박국 주해서(1QpHab)와 다마스쿠스 문서(CD)는 공동체의 형성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인물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한 명은 공동체의 창시자이자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인 ‘정의의 스승’(Moreh ha-Tzedek)이고, 다른 한 명은 그를 박해하고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린 ‘악한 사제’(ha-Kohen ha-Rasha)이다.18
이들의 역사적 정체를 밝히는 것은 쿰란 공동체의 기원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학설은 ’정의의 스승’을 기원전 2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정통 대제사장 가문, 즉 사독 가문 출신의 익명의 인물로 보는 것이다.14 당시 유대 독립 전쟁을 이끌던 하스몬 가문의 요나단 마카베오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정치적 지원을 받아 비사독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직을 찬탈했다(기원전 152년).14 이때 율법의 원칙이 훼손되었다고 믿었던 ’정의의 스승’과 그를 따르는 제사장 및 하시딤(경건한 자들) 무리가 예루살렘 성전 체제에 반발하여 광야로 물러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14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악한 사제’는 바로 대제사장직을 찬탈한 요나단 마카베오 또는 그의 후계자인 시몬 마카베오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18
’정의의 스승’의 정체에 대해서는 세례 요한이라는 설 60, 혹은 예수의 형제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라는 설 61 등 초기 기독교 인물과 연결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이는 문서의 연대와 내용에 부합하지 않아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62
3.1.3 대안 이론: 예루살렘 도서관설과 다른 기원설
에세네파 가설이 주류 이론이긴 하지만, 모든 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대안 이론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시카고 대학의 노먼 골브(Norman Golb) 교수가 제기한 ’예루살렘 기원설’이 대표적이다. 그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문서들의 서체와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 주목했다.13 어떤 문서는 이원론적이고 종말론적인 반면, 다른 문서는 그렇지 않다. 이는 단일하고 폐쇄적인 공동체의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골브는 사해문서가 쿰란 공동체라는 특정 분파의 도서관이 아니라, 서기 70년 로마 군단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직전, 예루살렘 성전을 비롯한 여러 도서관에 있던 방대한 장서들을 전쟁의 화마로부터 구하기 위해 급히 피신시켜 숨겨놓은 ’피난 도서관’이라고 주장한다.13 쿰란 공동체의 최후 격전지였던 마사다 요새에서도 희년서 등 쿰란 문서와 유사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점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1
이 외에도 이스라엘 학자 레이첼 엘리오(Rachel Elior)는 에세네파 자체가 요세푸스가 만들어낸 문학적 허구이며, 사해문서는 사독계 제사장 집단이 남긴 유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63 이러한 논쟁은 사해문서를 특정 분파의 시각으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당시 유대교 전체의 사상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파노라마로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된다.64
3.2 장: 키르베트 쿰란의 고고학
쿰란 동굴들에서 남서쪽으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고원 지대에는 ‘키르베트 쿰란’(Khirbet Qumran, ’쿰란 폐허’라는 뜻)이라 불리는 고대 유적지가 자리 잡고 있다. 1951년부터 시작된 이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은 사해문서를 남긴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복원하고, 텍스트의 내용을 물질적 증거로 뒷받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2.1 발굴된 유적을 통해 본 공동체의 일상
키르베트 쿰란 유적지는 공동체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생활 방식을 명확히 보여준다.4 발굴된 주요 시설들은 다음과 같다.
- 수로와 저수조: 유적지 서쪽 절벽의 와디(건천)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정교한 수로와, 이 물을 저장하기 위한 여러 개의 대형 저수조가 발견되었다. 연 강수량이 100mm도 채 되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 공동체가 생존하기 위해 물 관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준다.65
- 정결례 시설(미크베): 유대교의 정결 예식에 사용되는 계단식 목욕탕인 ‘미크베’(mikveh)가 10여 개나 발견되었다. 이는 공동체가 종교적 정결을 매우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다.66
- 공동 시설: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공동 식당 겸 집회소, 부엌, 도기를 굽던 가마, 그리고 망대가 발굴되었다.4 이는 개인 생활보다는 공동체 중심의 삶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 필사 공간(스크립토리움): 2층 건물의 무너진 잔해 속에서 길이 5m에 달하는 긴 석고 탁자와 함께 청동 및 토기 잉크병들이 발견되었다.65 많은 학자들은 이곳을 두루마리를 제작하던 필사실, 즉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으로 추정한다.
이 유적지에서는 서기 68년경 로마 군단에 의해 격렬하게 파괴된 흔적(화살촉, 화재 층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요세푸스가 기록한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로마군이 예리코와 사해 연안을 점령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38 학자들은 이때 쿰란 공동체 구성원들이 로마군의 진격을 피해 자신들의 소중한 문서들을 주변 동굴에 급히 숨겼을 것으로 추정한다.66
3.2.2 고고학과 텍스트의 연결: 정결례와 필사 활동
쿰란 유적지의 고고학적 발견과 사해문서의 텍스트 내용은 서로를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 이 둘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유적의 기능을 설명하고, 유적이 텍스트의 내용을 현실에 고정시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예를 들어, 『공동체 규칙서』는 공동체에 입회하기 전과 후에, 그리고 부정한 것에 접촉했을 때 반드시 행해야 하는 반복적인 침수 정결례를 상세히 규정한다.50 키르베트 쿰란에서 발견된 유난히 많은 수의 정교한 미크베들은 바로 이 텍스트에 기록된 규율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실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다.48 텍스트 없이는 이 시설들이 왜 이토록 많이 필요했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유적 없이는 텍스트의 규율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스크립토리움’으로 추정되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잉크병과 긴 탁자의 발견은 쿰란 공동체가 단순히 외부의 문서를 수집하여 ’보관’한 소극적 집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학을 담은 문서를 직접 ’생산’하고 성서를 필사하던 지적인 공동체였음을 강력히 시사한다.11
그러나 이러한 텍스트와 유적의 연결은 때로 순환 논리의 위험을 내포하기도 한다. 즉, 유적의 기능을 해석할 때 ’에세네파의 공동체’라는 텍스트 기반의 전제를 가지고 접근하게 되고, 그렇게 해석된 유적은 다시 에세네파 가설을 강화하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이 쿰란 유적지를 에세네파 수도원이 아닌 부유한 가문의 겨울 별장이나 도기 생산 공장, 혹은 군사 요새로 해석하는 대안적 주장을 제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와 유적 사이에 나타나는 수많은 일치점들은 쿰란 공동체와 사해문서, 그리고 키르베트 쿰란 유적지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4. 학술사적 의의와 현대적 과제
사해문서의 발견은 단순히 오래된 문서를 찾아낸 것을 넘어, 성서학, 역사학, 종교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지적 혁명이었다. 이 문서들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보존 기술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새로운 연구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4.1 장: 제2성전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연구의 혁명
4.1.1 유대교의 다원성 입증
사해문서가 등장하기 전까지, 예수 시대의 유대교, 즉 제2성전기 후기 유대교에 대한 이해는 주로 신약성서와 후대 랍비 문헌(미쉬나, 탈무드)에 의존했다. 이 문헌들은 대부분 바리새파의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당시 유대교가 바리새파 중심으로 비교적 획일적인 모습을 가졌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사해문서는 이러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쿰란의 도서관은 바리새파와는 전혀 다른 신학과 율법 해석, 달력 체계를 가진 에세네파라는 강력한 분파가 존재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64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제의를 비판하고, 자신들만의 엄격한 공동체를 이루며 독자적인 종교적 삶을 영위했다. 사해문서는 사두개파, 에세네파, 바리새파, 열심당 등 다양한 그룹들이 서로 다른 메시아 사상과 종말론을 가지고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대립하던, 역동적이고 다원적인 유대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69 이로써 후대 랍비 유대교는 당시 존재했던 여러 유대교 중 하나가 생존하여 발전한 형태임이 분명해졌으며, 유대교의 역사는 훨씬 더 복잡하고 풍부한 모습으로 다시 쓰이게 되었다.11
4.1.2 신약성서와의 비교 분석
사해문서에서 예수나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직접 언급하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집단이 활동했던 시기와 장소가 겹치고, 동일한 히브리어 성서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두 공동체 사이의 비교 연구는 필연적이었다. 이 비교를 통해 신약성서와 초기 기독교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유대교적 배경’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11
쿰란 공동체와 초기 기독교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점들이 존재한다. ‘빛의 자녀들’, ’어둠의 왕자(벨리알)’와 같은 이원론적 언어 51, 공동체 재산을 공유하는 모습(사도행전), 의로움, 진리, 성령과 같은 핵심 신학 용어의 사용, 그리고 세례 요한의 활동(광야에서의 외침, 회개의 세례)과의 연관성 등은 두 공동체가 동일한 사상적 토양에서 자라났음을 보여준다.48
하지만 유사점만큼이나 근본적인 차이점도 명확하다. 쿰란 공동체는 율법을 문자적으로, 그리고 더욱 엄격하게 지키려 했던 폐쇄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집단이었다.55 그들은 외부인들을 ’어둠의 자녀들’로 규정하고 증오할 것을 가르쳤다. 반면, 예수는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며 세리와 죄인, 이방인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다.55 쿰란 공동체가 두 명의 메시아(제사장적 메시아와 왕적 메시아)를 기다렸다면, 초기 기독교는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한 단 한 명의 메시아, 예수를 믿음의 중심으로 삼았다.70
결론적으로 사해문서는 초기 기독교가 결코 진공상태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교의 다양한 사상들과 깊은 대화와 논쟁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음을 보여준다. 사해문서는 기독교의 ’유대적 뿌리’를 밝혀주는 동시에, 예수의 가르침이 당시의 다른 유대 분파들과 비교하여 얼마나 독창적이고 혁신적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비교 자료가 되었다.19
표 3: 쿰란 공동체와 초기 기독교 핵심 사상 비교
| 주제 | 쿰란 공동체 (에세네파) | 초기 기독교 |
|---|---|---|
| 메시아관 | 두 메시아 대망: 아론(제사장)과 이스라엘(왕)의 메시아.70 | 단일 메시아: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
| 공동체 구조 | 사독계 제사장이 중심이 된 엄격한 위계질서. 2년 이상의 수련을 거친 제한적 입회.46 | 사도들을 중심으로 하되,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평등주의 지향(벧전 2:9). 믿음을 통한 즉각적인 입회. |
| 율법 해석 | 율법의 문자적이고 더욱 엄격한 준수 강조. 자신들만의 해석(페셰르)을 절대적 진리로 간주.19 |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과 정의, 자비를 강조(마 23:23). 율법의 완성을 주장. |
| 정결례 | 반복적이고 의무적인 침수 정결 예식을 통해 육체적, 제의적 정결을 유지.48 | 마음의 정결을 강조. 세례를 일회적인 입문 예식으로 간주. 음식 규례 등 외적 정결법의 상대화.55 |
| 종말론 |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 간의 마지막 전쟁을 통해 악이 섬멸되고 의인들의 공동체가 승리할 것을 기대.22 | 예수의 재림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도래와 최후의 심판을 기대. |
| 외부인에 대한 태도 | ’어둠의 자녀들’로 규정하고 철저히 분리. 증오할 것을 가르치기도 함(1QS). 배타적 분리주의. |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보편주의적 선교 명령(마 28:19). |
4.2 장: 보존과 공개: 디지털 시대의 사해문서
4.2.1 물리적 보존과 전시
2000년의 세월을 견뎌낸 사해문서는 발견된 이후 새로운 위협, 즉 빛과 습도, 공기 노출로 인한 급격한 노화에 직면했다. 이 귀중한 인류의 유산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과학적 프로젝트였다.
대부분의 주요 두루마리와 중요 단편들은 현재 예루살렘에 위치한 이스라엘 박물관의 상징적인 건물인 ‘책의 성전’(Shrine of the Book)에 보관되어 있다.9 최초의 두루마리가 담겨 있던 항아리 뚜껑 모양을 본뜬 흰색 돔 형태의 이 건물은, 내부의 온도, 습도, 조명이 최첨단 기술로 엄격하게 통제되는 특수 보존 시설이다.1 대 이사야서 두루마리와 같은 핵심적인 문서들은 제한된 시간 동안만 희미한 조명 아래 대중에게 공개되며, 일정 기간 전시된 후에는 암실로 옮겨져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보존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수만 개에 달하는 작은 단편들의 보존과 복원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제다. 이 조각들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조각 그림 맞추기’처럼, 수많은 학자들의 끈질긴 노력을 통해 원래의 문서 형태로 복원되는 과정에 있다.37 최근에는 양피지의 DNA를 분석하여 같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을 찾아내거나, 다중 스펙트럼 이미징 기술을 사용하여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글자를 복원하는 등 첨단 과학 기술이 이 퍼즐을 푸는 데 동원되고 있다.37
4.2.2 디지털 아카이빙 프로젝트
사해문서 연구의 역사에서 또 다른 혁명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찾아왔다. 과거 사해문서는 소수의 편집 위원회 학자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되어 연구가 독점되고 발표가 지연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지식의 장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2011년, 이스라엘 문화재청(IAA)은 구글(Google)과의 대규모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사해문서 전체를 디지털화하여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8 이 프로젝트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한 다중 스펙트럼 이미징 기술을 사용하여 각 단편을 초고해상도로 촬영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판독이 불가능했던 부분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전 세계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이 고대 문서들을 직접 보고, 확대하고, 검색하며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1
이스라엘 박물관 역시 자체적으로 소장 중인 주요 두루마리 5권(대 이사야서, 공동체 규칙서, 전쟁 두루마리, 하박국 주해, 성전 두루마리)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구글과 협력하여 웹사이트(dss.collections.imj.org.il)에 공개했다.8 이 디지털 아카이브는 단순히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각 구절에 대한 영어 번역과 관련 정보를 함께 제공하여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도 사해문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디지털화는 사해문서 연구를 소수 엘리트 학자들의 전유물에서 전 세계 시민과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개방된 학문의 장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발견과 연구를 촉진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5. 결론: 계속되는 탐구
사해문서의 발견은 20세기 지성사에 던져진 거대한 질문이었다. 한 베두인 목동이 던진 돌멩이 하나가 일으킨 파문은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성서학, 역사학, 종교학의 지평을 넓히며 계속되고 있다. 이 낡은 양피지와 파피루스 조각들은 과거를 향한 창이자, 미래의 연구를 향한 문이다.
사해문서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학문적 유산은 그 이중성에 있다. 한편으로, 이 문서들은 구약성서 본문이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경이롭게 안정적으로 전승되었는지를 입증하며 전통적 신앙에 강력한 고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마소라 본문과 다른 수많은 본문 형태를 드러냄으로써, 성서의 역사가 단일한 ’원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판본’들이 공존하고 경쟁하던 복잡한 과정이었음을 보여주며 본문 비평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처럼 사해문서는 본문의 ’안정성’과 ’다원성’이라는 두 가지 진실을 동시에 웅변한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문서의 저자가 과연 에세네파라는 단일 집단이었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피난 온 여러 분파의 문서 집합체였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13 막대한 보물의 목록을 담고 있는 『구리 두루마리』의 정체와 그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53, 쿰란 공동체와 초기 기독교 사이의 정확한 영향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 또한 계속되는 탐구를 요구한다.64
사해문서 연구의 미래는 새로운 기술과의 융합에 달려 있다. 양피지의 DNA 분석을 통해 흩어진 단편들을 재구성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 37, 인공지능을 활용한 서체 분석과 텍스트 복원, 그리고 전 세계 연구자들이 협업하는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해문서는 완성된 해답의 책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살아있는 텍스트다. 유대 광야의 메마른 동굴 속에서 2000년간 잠들어 있던 이 고대의 도서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성서의 세계와 고대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의 기원을 탐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 탐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6. 참고 자료
-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 사해문서(Dead Sea Scrolls, DSS)의 놀라운 폭로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21ceta/LCJi/144
- 사해 사본이란 무엇이며 왜 사해 사본이 중요합니까? - Got Questions, https://www.gotquestions.org/Korean/Korean-dead-sea-scrolls.html
- ‘사해문서’ 논쟁 종식시킨 연대측정법 - 뉴스로드, http://www.newsroad.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582
- ‘사해사본’ 발견 장소, 쿰란(Qumran), http://www.imr.co.kr/imrtj3/2018-5%ED%98%B8m/%EC%84%B1%EC%84%9C%EC%9D%98%EB%95%85/%EC%82%AC%ED%95%B4%EC%82%AC%EB%B3%B8%20%EB%B0%9C%EA%B2%AC%20%EC%9E%A5%EC%86%8C%20%EC%BF%B0%EB%9E%80.htm
- [성경사전] 사해사본-가장 오래된 성서사본 (쿰란동굴-염소찾던 베두인소년이 처음 발견), https://m.cafe.daum.net/ybc.com/69A9/137?listURI=%2Fybc.com%2F69A9
- 사해사본 발견과 출판, http://www.theology.ac.kr/institute/dtdata/%EC%84%B1%EC%84%9C%EC%8B%A0%ED%95%99/%EC%82%AC%ED%95%B4%EC%82%AC%EB%B3%B8%EC%B6%9C%EA%B0%84.htm
- 사해사본(死海寫本) - 1947년 쿰란 목동들이 발견한 구약 필사본, https://pasteve.com/opinion/bible-column/dead-sea-scrolls/
- 사해문서, 이젠 누구나 본다 - 미주 한국일보,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11003/687724
- 사해 문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D%95%B4_%EB%AC%B8%EC%84%9C
- 사해 문서 - 정의와 설명 | 성경 사전 - JW.ORG, https://www.jw.org/ko/%EB%9D%BC%EC%9D%B4%EB%B8%8C%EB%9F%AC%EB%A6%AC/books/%EC%84%B1%EA%B2%BD-%EC%9A%A9%EC%96%B4-%EC%84%A4%EB%AA%85/%EC%82%AC%ED%95%B4-%EB%AC%B8%EC%84%9C/
- 쿰란(Qumran)/ 쿰란 문서(사해 두루마리) - 주님의 숲, https://pmj3025.tistory.com/10067128
- 60년 만에 사해 사본 제12동굴 발견 - LOGOS 성경 소프트웨어 한국어 블로그, https://korean.logos.com/2017/02/11/60%EB%85%84-%EB%A7%8C%EC%97%90-%EC%82%AC%ED%95%B4-%EC%82%AC%EB%B3%B8-%EC%A0%9C12%EB%8F%99%EA%B5%B4-%EB%B0%9C%EA%B2%AC/
- 사해문서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82%AC%ED%95%B4%EB%AC%B8%EC%84%9C
- 쿰란(Qumran) - 사해 두루마리 - 자유 게시판 - 천주교 성요셉 대방동성당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DaeBangDong/ZYOH/722
- 두루마리 성경 - 성경 이야기 - 천주교 잠원동 교회 - 공식 카페, https://cafe.daum.net/jwcatholic/WAKr/181
- [성서주간 기획] ’사해사본’이란 - 가톨릭신문,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711250179166
- 사해사본, 성경 신뢰성과 말씀 보존하시는 하나님 강조 - 자유일보, https://www.jay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48
- <사해문서와 쿰란 공동체> - 율리아수녀의 산책길 - 티스토리, https://edere105.tistory.com/2386291
- 우리는 왜 사해 사본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 LOGOS 성경 소프트웨어 한국어 블로그, https://korean.logos.com/2017/05/08/%EC%9A%B0%EB%A6%AC%EB%8A%94-%EC%99%9C-%EC%82%AC%ED%95%B4-%EC%82%AC%EB%B3%B8%EC%97%90-%EA%B4%80%EC%8B%AC%EC%9D%84-%EA%B0%80%EC%A0%B8%EC%95%BC-%ED%95%A0%EA%B9%8C%EC%9A%94/
- 사해사본이란무엇인가? - 스타투어, http://www.startour.pe.kr/local/christ/jerico_qumram-01.htm
- 신학자료실, http://atsnu.org/_chboard/bbs/board.php?bo_table=m5_1&wr_id=144580&sst=wr_hit&sod=asc&sop=and&page=83
- 사해 두루마리 사본 - 기독교 자료 - 만나와 메추라기 - Daum 카페, https://m.cafe.daum.net/5413897/3J9r/2026
- 사해 두루마리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 JW.ORG, https://www.jw.org/ko/%EB%9D%BC%EC%9D%B4%EB%B8%8C%EB%9F%AC%EB%A6%AC/magazines/w20010215/%EC%82%AC%ED%95%B4-%EB%91%90%EB%A3%A8%EB%A7%88%EB%A6%AC%EC%97%90-%EA%B4%80%ED%95%9C-%EC%A7%84%EC%8B%A4%EC%9D%80-%EB%AC%B4%EC%97%87%EC%9D%B8%EA%B0%80/
- 중요한 구약 성경 사본(마소라 사본)에 대해서, http://biblenara.org/q&a/Q835.htm
- 구약성경 사본과 번역본(2) - 수원신학원, http://www.suwonts.org/bbs/board.php?bo_table=board6_3&wr_id=568
- 교회사(22) - 성경의 형성과 보존의 역사2 - 굿뉴스데일리, https://www.gndaily.kr/news/articleView.html?idxno=18809
- 70인역 - 나무위키, https://namu.wiki/w/70%EC%9D%B8%EC%97%AD
- 70인역 (r25 판) - 나무위키, https://namu.wiki/w/70%EC%9D%B8%EC%97%AD?uuid=1a43fee6-8314-4ff1-b79d-56ac1b185ab5
- 사해 사본과 성경 구약 : r/Catholicism - Reddit, https://www.reddit.com/r/Catholicism/comments/139vqpi/the_dead_sea_scrolls_and_the_bible_ot/?tl=ko
- 신구약 성경 사본과 정경 - 주님의 숲 - 티스토리, https://pmj3025.tistory.com/10068101
- 예레미야의 두 가지 판본이 있는데, 신약 성경은 그리스어, MT, 아니면 둘 다 인용했나요?, https://www.reddit.com/r/AcademicBiblical/comments/tj0iz2/there_are_2_variant_editions_of_jeremiah_did_the/?tl=ko
- 70인역이 마소라 본문보다 더 “믿을 만한” 거야? : r/AcademicBiblical - Reddit, https://www.reddit.com/r/AcademicBiblical/comments/demdfr/is_the_septuagint_more_reliable_than_the_masoretic/?tl=ko
- 쿰란공동체~ 경건의 모습, 에세네파를 존경하며, https://dbora1.tistory.com/entry/%E2%99%A4%EC%BF%B0%EB%9E%80%EA%B3%B5%EB%8F%99%EC%B2%B4%EA%B2%BD%EA%B1%B4%EC%9D%98-%EB%AA%A8%EC%8A%B5-%EC%97%90%EC%84%B8%EB%84%A4%ED%8C%8C%EB%A5%BC-%EC%A1%B4%EA%B2%BD%ED%95%98%EB%A9%B0
- 사해사본이란 - 평양대부흥, http://www.kich.org/news/articleView.html?idxno=1339
- 신학자료실, http://atsnu.org/_chboard/bbs/board.php?bo_table=m5_1&wr_id=145631
- 사해문서 (r163 판)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82%AC%ED%95%B4%EB%AC%B8%EC%84%9C?uuid=f2a974c5-5581-4327-84aa-cc42e137ac0d
- ‘구약성서’ 믿을 수 있나? DNA 파헤쳐보니 -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667697
- 양 찾던 목동이 동굴에서 ‘사해 두루마리’ 발견 - cpbc News, https://news.cpbc.co.kr/article/471942
- 에녹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97%90%EB%85%B9%EC%84%9C
- 에녹서는 사해 문서에서 발견되는 에세네파의 사탄 개념에 어떻게 부합할까? - Reddit, https://www.reddit.com/r/AcademicBiblical/comments/pynlx9/how_does_the_book_of_enoch_fit_into_the_essene/?tl=ko
- 구약과 신약의 사상적 배경이 되어 준 비밀의 책 에녹서_ 그 첫 번째, https://mall.godpeople.com/apps_page/a3_show_detail_iframe.html?gcode=9791197177453&_from=ax
- 에녹서 (슬라브어), https://consolation25.tistory.com/17
- 염성이라고 알려진 쿰란의 사해 사본의 의미, http://www.jcbs.kr/bbs/sub7_1/3028
- 희년서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D%9D%AC%EB%85%84%EC%84%9C
- 공동체 규칙서 / 한님성서연구소 - 생활성서사, https://biblelife.co.kr/goods/view?no=19584
- 공동체 규칙서 (회중규칙서,축복규칙서) / 한님성서, https://m.bundobook.co.kr/goods/view_contents?no=19261&zoom=1
- 사해 사본과 쿰란 공동체 | 존 J. 콜린스 -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22510
- 쿰란, 사해사본 - 자료 - 성복동 성당 여정 성경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chosa1010/HdIz/950
- 에세네파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7%90%EC%84%B8%EB%84%A4%ED%8C%8C
- 쿰란(Qumran) - 사해 두루마리 - 성지 이스라엘, https://terrasanta.tistory.com/17464756
- 사해사본의 어제와 오늘 - 기독교 자료 - 만나와 메추라기, https://cafe.daum.net/5413897/3J9r/373
- 구리 두루마리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5%AC%EB%A6%AC%20%EB%91%90%EB%A3%A8%EB%A7%88%EB%A6%AC
- 구리 두루마리 (r15 판)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5%AC%EB%A6%AC%20%EB%91%90%EB%A3%A8%EB%A7%88%EB%A6%AC?uuid=8513970b-90b7-406a-8500-bdce8a25a779
- 에세네파 사람들이 받아들인 글은 뭐였어? : r/AcademicBiblical - Reddit, https://www.reddit.com/r/AcademicBiblical/comments/128p6n6/what_are_the_accepted_writings_of_the_essenes/?tl=ko
- 쿰란 공동체 - 성지/고고학 - 믿음의 문학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nuri1009/OYKh/43
- 쿰란(Khirbet Qumran), 사해사본 (Dead Sea Scrolls) - 배성수성지사랑 - 티스토리, https://bss2079.tistory.com/15853350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특집] 광야에서 메시아를 기다렸던 ‘쿰란 공동체’ - 가톨릭신문,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006160216094
- 쿰란 사본과 성서 연구, https://www.bskorea.or.kr/data/pdf/16-01%20%EC%BF%B0%EB%9E%80%20%EC%82%AC%EB%B3%B8%EA%B3%BC%20%EC%84%B1%EC%84%9C%20%EC%97%B0%EA%B5%AC%20-4Q285,%204Q448,%204Q246,%207Q5,%2011Q13%EC%9D%84%20%EC%A4%91%EC%8B%AC%EC%9C%BC%EB%A1%9C-%20(%EC%86%A1%EC%B0%BD%ED%98%84).pdf
- [성경] 광야에서 메시아를 기다렸던 쿰란 공동체 - GOODNEWS 자료실, https://pds.catholic.or.kr/pdsm/bbs_view.asp?menu=4797&id=179472
- 비밀은 쿰란동굴에 유폐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1004
- 사해 문서에 나오는 “의의 스승“이 누구인지에 대한 학문적 합의가 있나요? : r/AcademicBiblical, https://www.reddit.com/r/AcademicBiblical/comments/qp1ln4/is_there_any_scholarly_consensus_on_the_identity/?tl=ko
- [예수, 그 낯선 분] 쿰란문서, 정의의 스승에 대한 논란 - 가톨릭일꾼,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1379
- 사해문서와 에세네 종파 - 김진양의 구약성서 이야기, https://otstorykorean.wordpress.com/2009/03/23/%EC%82%AC%ED%95%B4%EB%AC%B8%EC%84%9C%EC%99%80-%EC%97%90%EC%84%B8%EB%84%A4-%EC%A2%85%ED%8C%8C/
- Re:Re:1. 사해사본 -서론적 문제들 - 교양 영성 - 구약 외경 연구 - Daum 카페, https://m.cafe.daum.net/Apocrypha/2M2Y/27?listURI=%2FApocrypha%2F2M2Y
- 쿰란, http://kcm.kr/dic_view.php?nid=38024
-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유대 광야 5 (쿰란) - 국민일보,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842135
- [성지순례] 쿰란동굴(사해사본) - 평강제일교회, http://www.pyungkang.com/logos_04/146693
- 성서 고고학적 12개의 수수께끼, http://kcm.kr/dic_view.php?nid=38016
- 사해사본의 신비 - 기독교 자료, https://m.cafe.daum.net/5413897/3J9r/1181?
- GOODNEWS 자료실 - [성경] 사해사본이란?, http://home.catholic.or.kr/pdsm/bbs_view.asp?num=621&id=9383&type=L&SORT=C&menu=4797
- 사해문서, 인터넷으로 본다 -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444780.html
- 이스라엘, 사해문서 인터넷에 공개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10927061600009
- 사해문서 – Cultural Institute - Google, https://www.google.com/intl/ko/culturalinstitute/about/deadseascroll/